월요일~금요일 매일 2시 30분(한국시간)에 방송되는 "한국교회 순교사"에서는 김용국 목사님에 이어 산정현 교회를 끝까지 지킨 "유계준 장로님"의 이야기가 진행중에 있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배우고, 이해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유계준 장로님은...
1879년 4월 평남 안주군 청산5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3세에 부친을 여의고 평양으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실업계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자녀를 일찍 슬하에 두지 못해 고민하고 있을 때 마포삼열 선교사의 전도를 받아 교회 출석을 하기 시작하여 성도가 되었다. 이 무렵 집이 넒었으므로 집안에 미림교회를 설립하여 예배를 드렸다.
성공한 후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갖게 되어 평양 숭덕학교 재단 이사장으로 헌신하였다. 당시 한국사회에서 보기 어려운 양로원을 설립하여 사회사업에도 손을 뻗쳤다. 그러면서도 민족의 자유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1920년 독립투사들의 뒷바라지를 하기도 했고, 은신처를 제공하였으며 창씨개명 운동에 반대하였다. 물론 신사참배도 반대하였다.
주기철 목사가 47세에 순교를 하자 산정현 교회 사택을 평양신학교에서 쓰게 해 달라는 청원이 성립되었다. 유계준 장로는 사택을 비워달라는 요청을 들어주지 않고, 결국 평양 경찰서는 주목사 가족들을 끌어내고 사택을 폐쇄해 버렸다. 유 장로는 주기철 목사와 더불어 굳건히 신앙의 절개를 지켰으며 교회의 신성을 보존하였다. 이로 인해 견디기 어려운 고초를 감내해야만 했다.
해방이 되어 자유를 누릴 겨를도 없이 유 장로는 공산당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고, 탄압이 거세지자 부인과 8남매의 자녀들과 주기철 목사의 유족들을 월남시키고, 자신은 평양에 남아 교회를 끝까지 지켰다. 그는 6.25사변이 일어나기 하루 전날 공산당 정권의 정치 보위부 사람들에게 연행되어 구금되었고, 그로부터 3개월 후 9.28 수복이후 패주하던 공산군에게 순교당하였다.
일일드라마를 통해 더욱 생생하게 들으실 수 있습니다. 많은 청취바랍니다. 위의 글은 한국장로신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