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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그런 상황들을 통하여...

비비엔 방송은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복음적인 기독교 라디오 방송국중의 하나입니다. 비비엔방송국을 운영하는데는 수많은 사역자들이 필요합니다. 지역 방송국을 섬기는 분들을 비롯해서 여기 본사가 있는 NC,샬롯만해도 130여명의 방송사역자들이 각 언어분야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방송사역이 확대되면서 하나님께서는 꼭 필요한 새로운 사역자들을 보내주시고 계십니다.

최근에 새롭게 러시아방송 사역자로 오신 한 분을 소개해드립니다. 이름은 '이나'(Inna Kumpyak) 님이십니다. 이나님은 지난 10월부터 방송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나” 님이 BBN러시아방송 가족으로 오신 것을 축하드리며, 비비엔 방송에서 귀한 주님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와 건강을 위하여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럼 여기 간증문을 소개 합니다.

저는 경건하고 신앙이 깊으신 외할머니를 모신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14살이 될 때까지 외할머니는 친척들 중에서 유일하게 신앙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할머니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치셨는데 그 이유는 매일 매일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외할아버지와 세 자녀들 그리고 여러 손자손녀들이 신앙으로 돌아오기를 주님께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사촌들과 저는 할머니댁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우리의 성장에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식사 전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외할머니와 함께 서서 기도하곤 했습니다. 항상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외할머니는 주일이면 자주 우리를 (침례)교회에 데려가셨고 때때로 외할머니와 함께 어린이 성경도 읽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들어 보았고 언젠가 저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과 똑 같이 되겠지 하지만 아직은 아냐” 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나 활기 없이 언제나 엄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 다른 환경들을 통하여 제 마음 속에서 역사하셨고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힘든 그런 환경들을 통하여서 조차 역사하셨습니다.  14살이 되던 해에 제가 이제껏 인생에서 경험한 가장 큰 상실 중의 하나를 경험했는데 사랑하는 외할아버지를 잃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6개월 후에 제겐 쌍둥이 남동생이라고 해도 좋을 한 살 어린 사랑하는 사촌 동생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외할아버지께서 임종하시면서 우리가 듣지는 못했지만 회개하셨을 거라 희망합니다. 반면 제 사촌은 확실하게 죽음을 맞기 전에 회개했고 빠르게 악화되던 암으로 인한 고통을 덜어준다면서 엄마에게 성경을 읽어달라고 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시점에 저는 자주 하나님께 “왜?”라고 물었습니다. 그 사건이 우리 중 많은 이들의 심령에 어떤 영향을 끼쳤던 지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촌동생이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사촌의 어머니가 회개했고 믿음의 첫 열매가 됐습니다.
 
15살이 되던 해에 저는 아카데믹 시티에 있는노보시비르스크국립대학 부설의 노보시비르스크체 체육 수학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소련의 붕괴와 제가 거주하던 키르기스공화국의 수도 비슈케크의 교육상황을 감안해서 부모님께서는 저를 그곳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에 따라 저는 노보시비르스크에 가서 공부하고 졸업한 후 노보시비르스크국립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았습니다. 매해 여름방학이면 가족에게로 돌아 갔고 집을 떠나 올 때마다 외할머니께서는 늘 동일한 한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손녀야, 어느 곳에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잊지 말거라, 하나님께 가까이 거해라, 하나님을 붙들거라.” 외할머니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겼지만 그 말씀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첫 해 동안 저는 러시아에 있는 대학생선교회의 일부인 “뉴라이프”에서 나온 여러 선교사들을 만났습니다. 선교사들이 복음을 설명해 주었고 저는 복음을 이해했으며 저들과 교제했지만 선교사들에 대해서는 약간 조심스러웠는데 많은 이단들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해 여름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향교회에 돌아가서 교회를 재건축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그리스도인 청년들을 만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손의 역사였음을 믿습니다. 저들의 삶은 제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교인들에 대한 생각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 심령 속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저로 하여금 죄책을 느끼게 하셨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악한 자와 제 자신의 죄 성이 그것을 막았습니다.  9월에 노보시비르스그로 돌아가서 선교사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저들을 향한 제 마음이 매우 달랐습니다.  선교사들도 침례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알고 저는 매우 기뻤고 그래서 그 교회에 저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출석하기 시작한 후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주일에 쟈트바교회에서 마침내 죄를 회개하는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저의 신앙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단순히 “주일출석교인”만이 아닌 참된 하나님의 일군이 되기까지 거의 일년 반이 걸렸습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제가 얼마나 당신을 필요로 하는지 또 제가 제 자신을 생각하던 만큼 잘난 사람이 아니었음을 점진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몇 달 후에 하나님께서는 제 어머니를 신앙으로 돌이키셨고, 저 밑으로 두 번째 어린 사촌도 믿음으로 돌아왔습니다. 몇 년 후에는 제 의부형제도 그리고 저보다 나이 많은 사촌 한 명도 신앙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현재 제 사촌들은 대부분 믿음의 아내를 얻어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아직도 사촌들과 저는 아버지들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주님께 돌아오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제게 기독교 기관에서 주님을 섬길 마음과 기회를 주셨습니다. 노보시비르스크 국립대학을 졸업한 후 여러 해 동안 노보시비르스크 성경 신학대학원에서 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비비엔방송으로 저를 이끌어 오셨고 비비엔 러시아어 방송에서 섬길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라 하나님께서 여기서도 저를 사용하여 주시기를 저와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작성자   비비엔 한국어방송    작성날짜  11/27/2006 3:03 PM
조회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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