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안에
2005년 1월 19일 일본에 계시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 아픔을 제 마음에 새기셨습니다.
2년전 즈음에 제 아내와 저는 아버지와 마지막 저녁식사를 가졌습니다. 그때 나눴던 대화들이 마지막 일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하나님의 섭리대로 아버지의 죽음이 다가오면서, 정신적으로 스스로를 준비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죽음은 뼈아픈 경험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크리스챤이 되기도 전에 데리고 가셔도 되는겁니까? 그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던 수많은 기도들은 무엇입니까?” 저는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58년간 함께 했던 시간동안, 제 생애의 지금 겪고 있는 어려운 일들, 아버지와 제가 서로 나누었던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안에 피할 수 없는 과정임을 조금씩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두사람의 삶에서 “왜”라는 질문들의 해답을 찾았던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4살 때 하나님께서 왜 어머니를 데리고 가셨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5살되던 해에 아버지께서 왜 재혼을 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두 사건이 저에게 하나님을 찾고 제 삶을 그분에게 드리기 시작하게 만든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섭리는 제가 살아오는 동안 인생의 의미를 찾고, 그의 계획을 배워가며, 죄를 인정하고, 한결 같은 사랑을 찾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을 이끌어 주었습니다. 결국은 주님의 섭리로 제가 기독교인이 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아버지께서 저에게 세계 2차대전에 대한 기억을 조금의 자부심과 슬픔을 섞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나이 17세에 일본 해군에 입대하셔서 하루나(Haruna)를 파괴하는 조타수(操舵手)로써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미군에게 격렬하게 침범당한 야마토 전투의 생존자들을 돕는 하츠시모의 한 일원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오랫동안 아버지와 저의 삶 사이에 관계성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세계대전을 통해 세상에 맞서는 적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최후에는 패배자의 삶을 맞이했습니다.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했습니다.
저는 60년전 아버지의 적이었던 곳에 있는 BBN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서로 죽이기 위함이 아닌 서로를 살리는 것을 위해서 말입니다. 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오늘날 이곳에 있는 이유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윈이후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이고, 전쟁동안 저질렀던 아버지의 죄를 보상하기 위해 저의 남은 생애를 바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인으로 또한 목사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고 저를 이끌어 주는 이유입니다. 창조주를 제외한 누가 제가 지금 서있는 이 길을 걷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까지 저의 부모님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은 채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부로 만나게 하지 않으셨다면, 제가 오늘날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종으로 부름받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르라” 이 음성이 저에게는 꼭 이렇게 들렸습니다. “너의 신앙없는 부모를 떠나라. 너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제가 지금까지도 가슴깊이 후회하고 지키지 못한 약속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2년전 아버지에게 증손주를 보여주겠다고 했던 약속입니다. 지금의 제 손녀딸로 태어난 Liliana Fisher 말입니다.
인간의 약속은 모두 다 이뤄지지는 않지만, 신실한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진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BBN 일본어 방송 아나운서
Kenji Taka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