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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최원초목사님는 1905년 11월 27일 평안북도 삭주군에서 최대성의 2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보통학교를 마치고 가족을 따라 만주로 건너가 연변 농업학교를 마친 후 전매청에 취직이 되어 근무하다. 몇 년 후에는 판매소장직에 취임하게 되었다. 사색적이고 학구적이었던 그는 전매청 근무가 마땅치 않았다. 그 무렵 그는 기독교 전도자를 만나 예수를 믿게 되면서 남들은 그토록 부러워하는 전매청 근무가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미련없이 사표를 던져버리고 사립학교 선생으로 뛰어들었다. 당시에는 관인도 얻지 않은 사설학원이 애국인사들에 의해 많이 세워져 있었지만 고등교육을 받은 선생은 태부족이었다. 그래서 마음만 먹는다면 교원자리는 언제든지 얻을 수 있었지만 생활비가 문제였다. 학생도 별로 많지 않은 사립학교 교사들은 헌신적인 봉사 정신이 없이는 교사노릇 하기가 불가능했다. 최원초도 처음에는 뜨거운 열의를 가지고 교사직에 뛰어 들었지만 생활비 때문에 허덕이게 되자 많은 갈등을 겪게 되었다. 결국 그는 교사직을 그만두고 평양으로 내려와 평양신학교에 입학했다. 평양신학교에 재학하며 벽동교회 조사로 재직하던 1938년에 장로교 총회는 신사참배를 국민의례로 가결해 버렸다. 그렇게 되자 교회는 주일 예배 시에 일동 기립해서 일왕의 위패에 절을 하고 난 후에 예배를 드렸다. 최원초목사는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신앙을 위해 그 좋은 직장도 박차고 나온 것인데 교회에 들어오니 이단 사술에 목덜미를 잡히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었으니 한없이 서글퍼졌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아래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그때 그 마음에 간음한 교회의 슬픈 자화상이 보였다. 최원초는 간음한 교회를 떠나 노동자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노동품팔이로 살며 나름대로 신앙을 지켜나갔다.

거기에다 신학교까지 폐교되어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입장이 되자 그는 더욱 암울해졌다. 그러다가 그는 학교가 잠시 개교할 때 재등록하여 1942년 37회로서 졸업을 하고 안주노회에서 안수받고 기탄교회로 부임했다. 최목사는 한 교회의 교역자로서도 훌륭했지만 부흥강사로서 더 많은 활동을 했다. 그는 평소 기도와 독경을 강조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만독, 빌립보서 3천독을 해서 부흥사경회 때 계시록을 20분 만에 외우기도 했다. 또한 독학으로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익혀 원어를 막힘없이 했고, 영어 또한 원전 강해를 할 실력이었다. 1945년 해방이 된후 특히 최 목사는 끝까지 기독교도연맹 가입을 반대함은 물론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한 어용기관임을 폭로했다. 그래서 그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최후를 위해 솜바지 두루마기를 입고 교회 강단에서 철야하기를 쉬지 않았다. 1944년 기탄교회에서 정주 신안주교회로 옮겨 목회하던 최목사는 6.25사변이 터진 1950년 9월 23일 오후, 교회 강단에서 공산당에게 연행 당해 끌려가 소식을 모르고 있다. - 장로신보 발취-

일일드라마 '한국교회 순교사'눈물과 희생으로 씨앗을 뿌린 믿음의 선조들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간증 드라마입니다. 한국교회 순교사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5회 한국시간으로 오전, 오후 2시 30분에 방송됩니다.
7월3일부터 최원초 목사님의 간증드라마가 방송됩니다. 기도와 사랑으로 지금의 한국교회의 기초를 다져주신 최원초 목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작성자   비비엔한국어 방송    작성날짜  6/30/2006 9:37 AM
조회수  2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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