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행숙 청취자의 구원 간증
저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교회는 어릴 적부터 지속적으로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1998년 1월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소위 운동권으로, 대학 시절 동안 한국 정치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제 몸과 마음을 조국을 위해 바쳤고,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걸음'을 선언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건설하는 비전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없는 이들은 더욱 궁핍하고, 약한 자는 더욱 억압당하는 상황에서 제 안에 공허함과 무기력이 서서히 쌓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 사고의 전환점이 생기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데모를 마치고 새벽 공기를 맡으며 혼자 집으로 내려 가는 길이었는데 한 남학생은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올라 오는 그 찰나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집으로 그는 도서관으로… 예전에는 국가가 어찌되든, 학생의 권리가 유린당하든 말든 나 몰라라 하며 자기의 안위만을 위해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는 도서관 파인 학우들을, 소위 책벌레들을 진짜로 벌레같이 여기며 경멸하였고, 세상의 불의에 대해 침묵하는 그들을 비겁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또 다시 사회의 상위계층을 이루고, 그들은 또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주장함으로써 사회의 악순환은 계속 이어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갑자기 이러한 질문이 내 안에 생기게 되었습니다. 과연, 누가 이사회의 개혁을 위해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 걸까? 학생으로서의 의무에는 충실하지 않으면서 기성 세대를 비판하는 행동주의자인 나와, 비록 학우들 가운데서 이기주의자, 비겁자라는 비난을 받기는 하지만, 묵묵히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여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꿈꾸며 현실에 충실하는 그…
그러한 질문은 연이어 또 다른 물음을 낳았습니다. 4년 동안 정치인들의 자기 혁신과 변화를 부르짖었지만, 과연 나는 그들보다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과연 부패하지 않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가? 내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대생의 권리를 위해 총여학에서, 나의 시간과 열정을 불태웠는데, 공허함이 밀려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렇게 계속되는 질문들에 대해 그 어떤 답변들도 나에게 진정한 위로와 만족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갈등으로 공허해져 있을 때, 한 친구가 나에게 교회 청년 수련회에 참여하자고 제의 했지만, 저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나이롱 교인으로 교회에 가면 늘 뒷자리에 앉아 자리수만 채우거나 말씀이 선포 되면, 말씀을 이리 저리 쪼개어 현실의 참여에 무관심한 한국 기성 교회들을 비판하곤 했습니다. 그런 생각들 가운데 2박 3일 동안 진정한 동지애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입으로만 사랑을 말하는 가식적이고 낯 설은 교회라는 조직가운데 내 몸을 의탁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결국 수련회에 참여하게 되었고, 사도행전 4장의 베드로 사도의 설교가 그 당시에는 정확하게 이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염없는 회개와 감사의 눈물이 그 때부터 시작하여 거의 6개월 동안 멈추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며 공허하고 허무한 나의 마음을 채워보려고 했으나, 행 4:12절 ‘’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신 말씀을 통해, 오로지 구원을 위해 주신 이름은 예수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만이 나의 삶의 목적이며 목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비록 내가 공의를 위해 젊음을 불살랐던 그 시절도 결국은 나의 의를 나타내기 위한 교묘한 술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왜 구원해 주셨는지 알 수는 없으나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생각하면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나의 모든 죄를 영원히 다 사하시고 영생을 선물로 주신 그 구원의 감격이 얼마나 컸던지 피조물인 제가 창조자이신 하나님께 그 어떠한 것을 해드려도 아주 미미한 것이라 생각 되었지만, 그래도 무엇인가를 해드려서 은혜에 보답하고 싶은 것이 당시의 저의 심정이었습니다.
마치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큰 효도인 것처럼, 절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가장 큰 효도는, 그분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알아야 했는데, 그래서 생명의 삶이라는 책을 구입했습니다. 사실 큐티라는 것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그 책으로 말미암아 저의 신앙의 토대를 세우기 시작했고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함으로써 기도의 훈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청년회에도 계속 참석하였고, 교육 전도사님이셨던 분이 저를 간사로, 엘더로, 팀장으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시고, 그러면서 집중적인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그분의 가슴앓이를 앓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속히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애통함, 무지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다른 우상들에게 숭배할 때 그분의 질투심, 미전도 종족들에게 전하는 자가 없어서 예수님 이름조차 듣지도 못하고, 지금 이순간에도 지옥에 뚝! 뚝! 떨어지고 있는 그 소리 때문에 하나님의 고막이 터질 것 같아, 신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저에게도 똑같이 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부르신 것처럼, 동일하게 다른 자녀들도 속히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또한, 저를 구원해 주신 그 구원의 감격은 뭇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애절한 마음이 저에게도 동일하게 들게 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저를 준비 시키시고, 선교사로 훈련시켜서,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편한 도구로 사용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는 것과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겨주신 인도의 무슬림을 섬기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볼 때 너무나 감사하기만 합니다.
저는 지금 이순간 여러분께서 어떠한 처지에 계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상황을 아시며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 구원을 위해 주신 이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힘든 오늘의 삶도 오로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인도 윤행숙 선교사